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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기업 인수해 황금알로… 'M&A 미다스 손' 한화
✍️ 신륭기공 📅 2008.09.18 00:00 👁 43
[건국 60년, 대표 기업의 성공DNA] <9> 변화와 혁신이 살 길이다
부실기업 인수해 황금알로… 'M&A 미다스 손' 한화
일본인들이 남긴 화약공장서 출발
유통·레저·금융 등 끝없는 외연 확장

유인호 기자 yih@hk.co.kr
사진=홍인기기자 hongi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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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1월, 한국화약주식회사 김종희 사장실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그는 대뜸 "우리나라에도 화약 공장이 있는데, 왜 화약을 만들어 내지 못하느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한국화약은 수입 화약을 유통하는 회사였을 뿐, 화약을 만들 수 있는 자체 공장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당시는 전쟁이 끝난 직후라 자주 국방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다. 그런 만큼 화약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수입 화약 물량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다.

이 대통령은 "하루 속히 화약 만드는 방법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화약 공장을 새로 지으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김 사장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유일한 화약 공장인 조선유지 인천공장을 떠올렸다.

즉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인천공장 복구 계획을 세웠고, 400여 쪽에 달하는 복구 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김 사장은 1955년 6월 10일, 꿈에도 그리던 화약 공장(조선유지 인천공장)을 품에 안았다. 인수ㆍ합병(M&A)을 통해 '변화와 혁신'을 거듭해온 한화그룹의 첫 번째 M&A였다.

■ M&A는 한화의 역사

국내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직접적인 생산설비 투자를 통해 성장해왔다. 하지만 한화그룹은 태동부터 달랐다.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사업체를 불하 받아 출발한 것은 비슷했지만, 이후 다른 기업과는 달리 당시 생소하던 M&A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사업을 불려갔다. 한화그룹의 역사는 M&A의 역사인 셈이다.

한화그룹 창립자인 고 김종희 회장은 이승만 대통령의 '화약 국산화' 의지에 적극 부응, 부실 운영 중이던 국영기업 조선화약공판을 인수해 한국화약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어 조선유지 인천공장을 인수했고, 이듬 해인 1956년 드디어 화약 국산화에 성공한다. 57년엔 자체 기술로 다이너마이트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화약 국산화로 몸집을 키운 한화는 국가 근대화의 핵심산업인 기계산업으로 눈을 돌려 64년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신한베어링공업을 인수한다. 부실 기업을 인수한 뒤 외국과의 적극적인 기술 제휴 및 신규 생산설비 확충을 통해 경영을 정상화하는 한화의 수완은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한화의 M&A는 국가 근대화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됐다. '화약, 화학, 기계 등 기간산업 부문을 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육성해 국가발전에 초석이 된다'는 고 김종희 회장의 창업 이념을 반영한 것이다.

■ 사업 다각화 통한 변신

고 김 회장은 1981년 7월 23일, 한창 일할 나이인 향년 59세로 영면했다. 그로부터 1주일 뒤인 8월 1일, 외아들 김승연 회장이 제2대 회장에 취임하면서 한화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게 된다. 당시 김 회장의 나이는 만 29세. 20대 총수를 지켜보는 주변의 시선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김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며 드라이브를 걸었다. '개혁적 사고로의 전환과 안정을 바탕으로 한 성장 정책'을 추진하면서 혁신적인 M&A를 잇따라 구사한 것이다.

김승연 회장은 한화석유화학의 전신인 한양화학과 경인에너지를 성공적으로 인수, 그룹의 주력 기업으로 성장시킨다. 이는 한화가 기간산업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사업 다각화 모델을 구성하는 발판이 됐다.

김 회장의 공격적이고 혁신적인 M&A 성공에 힘입어 1980년 7,300억원 수준이던 그룹 매출이 4년 후인 84년 2조1,500억원으로 3배 이상 늘어 10대 그룹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한다.

김 회장은 86년 한양유통(현 갤러리아백화점)을 인수한 뒤 국내 최초로 '명품백화점'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유통산업에 파란을 일으켰다. 같은 해 정아그룹을 인수해 사명을 한국국토개발㈜로 바꾸고 관광ㆍ레저 산업에도 본격 진출한다.

■ 구조조정으로 체질 개선

물론 시련도 있었다. 97년 외환위기를 맞아 한화바스프우레탄, 한화 NSK정밀, 한화자동차부품 등의 지분을 처분해야 했고, 빙그레와 경향신문을 계열 분리시키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당시 사업 매각은 한화가 진정한 M&A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화는 신속하고도 단호한 구조조정을 통해 외환위기를 극복함으로써 그룹의 체질을 개선하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화는 2001년 대우전자 방산 부문을 인수해 ㈜한화의 방산 경쟁력을 한층 높였고, 2002년에는 외환위기로 대규모 부실에 빠져 있던 대한생명을 전격 인수함으로써 금융업을 그룹의 새 성장축으로 육성하는 전환점을 맞았다.

■ 글로벌 M&A 시동

한화는 이제 '글로벌 한화' 비전 달성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해 1월 태국에서 계열사 사장, 임원 등 그룹 핵심 임원 50여명과 함께 '해외사업진출 전략회의'를 열고 현재 그룹 매출의 10% 수준인 해외 매출 비중을 2011년까지 40% 수준으로 끌어올려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중장기 목표를 설정했다.

이후 ㈜한화, 한화석유화학, 한화종합화학 및 한화증권 등 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은 적극적인 해외 투자 및 해외 M&A에 나서 가시적인 성과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서도 한화는 초우량 조선업체인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그룹 역량을 집중하는 한편, 성장 잠재력이 해외 기업 인수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기업을 키워 국가발전에 공헌한다'는 보국의 M&A로 시작된 한화의 M&A 역사는 변화와 혁신을 거듭하며 이제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할 채비를 갖췄다.

"오너의 리더십이 그룹 도약 추진력"

'한화 산 증인' 이순종 부회장

가을 햇살이 따갑던 12일 오전,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24층 대회의실에서 '한화의 산 증인'으로 불리는 이순종(65) 부회장을 만났다.

과거 얘기를 물으니 40년 전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 듯 감회에 젖는다. 그의 기억은 눈을 마주치기도 힘들 만큼 카리스마가 강했던 고 김종희 회장과의 첫 대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대 법대생으로 한화그룹 신입사원 채용에 응모한 이 부회장은 필기시험을 통과한 뒤 최종 면접에서 한화 사장이던 고 김 회장과 맞닥뜨렸다. 우리 경제상황이나 한화의 경영철학 등에 대한 질문을 예상하고 있던 이 부회장에게 예상 밖의 질문이 던져졌다.

김 회장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3선 개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잠시 당황한 이 부회장은 자세를 가다듬은 다음 "지금 저에게는 3선 개헌이 아니라 한화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라고 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밖에 안 나오는데, 김 회장은 빙그레 미소만 지으시더군요." 이 부회장의 술회이다.

이 부회장이 기억하는 고 김 회장은 국가와 사업 밖에 모르던 강직한 성품의 경영인이다. 1977년 전북 이리역(현 익산역) 폭발사고는 한화 역사상 최대의 시련이었다. 하지만 사고 수습 과정에서 김 회장이 보여준 의연한 행동은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김 회장은 사고로 많은 사람이 숨진 데 대해 심한 자책감을 느껴 피해 보상은 물론 개인 재산까지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심하고, 이런 내용의 편지를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냈다.

빈털터리가 될지언정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철학이었다. 이에 감동을 느낀 박 전 대통령은 "피해 보상만 제대로 하라"며 오히려 김 회장을 격려했다.

"김 회장은 이리역 폭발사고 이후 자신을 돌보지 않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방안을 고민하다 건강이 많이 나빠졌어요. 기업 활동을 한창 열심히 할 나이에 건강 문제로 돌연 사망해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지요." 순간 이 부회장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이 부회장은 한화가 화약과 중화학 중심 기업에서 서비스, 금융 등을 망라한 그룹 형태로 변신한 것은 김승연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화가 M&A를 통해 오늘의 그룹 형태로 발전한데는 새로 취임한 김승연 회장의 미래 지향적인 경영철학이 토대가 됐습니다."

이 부회장은 1960년대 10대 그룹 중 반세기가 지난 현재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그룹이 한화와 삼성 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김승연 회장의 경영능력은 이미 검증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29세의 젊은 나이에 회장에 취임했을 때만 해도 우려의 시선이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양화학과 한화유통, 한화리조트 등을 성공적으로 인수하면서 제2의 창업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지요.

IMF 외환위기도 적기 구조조정을 통해 극복했고, 2002년엔 대한생명 인수를 통해 한화를 재계의 선두 그룹으로 우뚝 세웠습니다. 혜안을 갖춘 지도자가 있어서 한화의 미래는 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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